![]() ▲ 사진= 정여립 초상화 © 완주군 제공 |
[디스커버리뉴스=정기환 기자] 조선의 역사는 정여립을 선조 때의 모반자로 기록하고 있다.
또한, 영국의 올리버 크롬웰보다 50년 앞선 공화주의자였다는 평가도 있고, 홍길동전을 쓴 허균의 호민론, 정약용의 탕무혁명론, 1894년의 동학 농민혁명까지 그 사상이 이어졌다고 보고 있기도 하다.
![]() ▲ 사진=정여립 쉼터 안내표지 ©완주군 제공 |
선조 22년 기축옥사의 중심인물로 정여립 본인은 진안 죽도에서 자결하였고, 그의 집터는 파가저택(죄를 범한 자들이 살던 집을 불사르고 그곳에 연못을 만들어 후대에도 집을 짓고 살지 못하게 만드는 조선시대의 최고 형벌) 되어 지금은 그 흔적만이 남아있는데 그곳이 바로 정여립 생가터이다.
당시에 기축옥사와 정여립에 대한 평가는 지금까지도 엇갈리고 있으며 많은 부분이 재조명되고 있다.
![]() ▲ 사진= 정여립 생가터 ⓒ완주군 제공 |
정여립 생가터는 완주군 상관면 신리 월암마을에 있다. 전주시 색장동을 벗어나자마자 나오는 월암교를 건너면 정여립 생가터가 있는 월암마을이 나온다.
마을 사람들에게 '파쏘'라고 불리는 정여립 생가터는 한동안 말 그대로 집터의 흔적만 알 수 있는 모습으로 존재하였으나, 최근에 우물 복원 및 정자 등의 쉼터, 주차장을 갖춘 공원으로 탈바꿈하여 방문객들을 맞이하고 있다.
![]() ▲ 사진= 정여립쉼터 표지판 © 완주군 제공 |
깔끔하게 정비된 모습 탓인지 평일 낮에도 제법 많은 수의 사람들이 방문하고 있다. 생가터 가기 전에 있는 정여립 쉼터와 아름다운 순례길 1코스, 죽도 가는 길 등을 연계하여 좋은 관광코스가 될 것이다.
![]() ▲ 사진=정여립 생가터 우물 ©완주군 제공 |
![]() ▲ 사진= 상관 저수지 © 완주군 제공 |
![]() ▲ 사진= 상관 공기마을 편백숲 © 완주군 제공 |
이곳에서 우리의 지난 역사를 다시 한번 돌아보고 선조들의 과거 발자취를 살펴보는 것도 의미 있는 좋은 국내여행이 될 것이라는 생각을 가져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