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히려 하동'을 운영 중인 (주)다른파도 이강희 대표
▲: '오히려 하동'을 운영 중인 (주)다른파도 이강희 대표

[디스커버리뉴스=정기환 기자] 행정안전부의 ‘청년마을 만들기 지원사업(이하 ‘청년마을 사업’)’은 청년들이 지역의 자원을 활용해 마을 만들기 사업을 펼치는 것을 돕는 사업이다. 지방 지역 청년들의 유출을 막고 도시 청년들의 지역 정착을 도와 청년들에게는 새로운 기회를 제공하고 지역에는 활력을 높이는 것이 사업의 목표다.

지난 18년 처음 시작된 청년마을 사업을 통해 ▲전남 신안군 ▲ 경남 거제시 장승포동 ▲충남 서천 한산면 안좌도 등 여러 지역들이 청년들의 반짝이는 아이디어와 에너지를 만나 새로운 청년마을로 변화하고 있다. 경상남도 하동군에서 2022년 청년마을 사업에 선정돼 청년 기업을 운영 중인 ㈜다른파도의 이강희 대표를 만나보았다.

■ 게임 개발자가 꿈꾸는 IT 도시 하동

다른 청년마을 사업지들은 지역의 전통적인 자원이나 환경을 활용하는 성격이 강한데, ‘오히려 하동’은 다른 특징이 있는 것 같다.

“하동에 내려와 처음 배달 어플을 사용했을 때, 서울에 무수히 많은 가게들이 어플 속에서 경쟁하고 있는 반면, 하동은 치킨 한 마리조차 시켜 먹기 어려운 실정이었다. 서울에서 게임 개발을 하다 고향에 내려와서 이러한 지역 문제에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진짜 기술이 필요한 곳은 지역인데 우리나라의 모든 기술들은 수도권에 몰려 있다는 걸 지역에 내려와서야 깨닫게 됐다. 개발자로서 하동에서 이런 문제를 잘 풀어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이강희 대표는 가장 먼저 하동의 버스 시간표를 검색하는 뷔다(영어 ‘view’/‘보다’ 방언) 서비스를 개발했다고 들었다. 버스가 제 때 오지 않는 정확도 문제가 심각한 하동 버스 정류장의 정보시스템을 어플을 활용해 보완하려는 의도가 있었지만, 정식 런칭은 되지 않았다고 들었다.

“런칭과 상관없이 유의미한 노력이었다. 하동을 깊게 관찰하는 가운데 하동군청 같은 행정과의 인연도 시작되었고, 하동에 저희들의 존재를, 청년의 움직임을 인식시킬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오히려’의 철학, “청년이 있는 한 하동은 소멸하지 않는다”

‘Why not? (왜 안 돼?) 하동이 IT 도시가 되면 왜 안 되지?’라는 이강희 대표의 질문으로 시작된 하동의 새로운 파도는 2022 행정안전부 청년마을로 이어졌다. 이 대표는 처음 청년마을 이름을 지으며 ‘Why not?’과 비슷한 맥락을 가지면서 최근 MZ세대 사이에서 유행하고 있는 ‘오히려 좋아’를 떠올리게 되었다.

“오히려 하동’은 아무것도 없어 보이는 하동이 산과 강 바다가 모두 있어 오히려 청년이 활용할 수 있는 자원이 풍부하고 도전하기 좋은 곳이라는 의미를 가진다. 지역에서 먹고사니즘을 고민하면서도 이를 뛰어넘어 지역의 소멸을 소멸하고자 하는 포부를 담았다. 하동에서 100만원 벌기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참여자에게 지역살이의 현실적인 부분을 강조하면서도 청년활동 자체가 하동에 주는 의미를 덧붙였다. 사실 단순히 돈을 버는 걸 넘어 이곳에서 하는 모든 청년의 도전과 활동은 중요한 의미가 있다. 그동안 하동에 청년들이 이렇게 많은 흔적을 남겨본 적이 없을 것이다”

■ 하동에서 ‘먹고사는’ 문제에 ‘IT’ 한 방울

하동은 차가 유명한 지역으로 실제 녹차의 경우 하동이 전국 차 생산량의 30%를 차지한다. 여기에 최근 하동이 인기 있는 관광지로 다시 부상하며 몇몇 유명세를 탄 다원이 있다. 그러나 여전히 지인이 아니면 다원의 차를 예약하거나 차 관련 상품들을 구매하기 어렵고 때로는 정보조차 얻기 어렵다. 이런 문제점을 모아 하동의 다원과 그들의 상품들을 어플과 공간에 아카이빙해 차 투어, 차 문화 상품 큐레이션 등을 고객에게 제공하자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로컬리티를 더욱 살려 신선한 찻잎의 가치를 높일 수 있게 된다.

“청년마을 사업 구성원들이 하동에서 생산된 차에 IT 기술을 결합해 ‘차 문화 플랫폼 및 브랜드’을 개발해보자는 의견을 제시했다. 생산지에 있는 기업이 제품을 판매하면 로컬성을 띌 수 있고 소통 측면에서도 이점이 있다. 이러한 점을 ‘IT’로 스마트하게 풀어 진짜 하동의 차를 다양한 콘텐츠로 풍성하게 제공할 수 있다”

이처럼 이 대표와 참여 청년들은 하동 내 익숙하거나 혹은 잘 알려지지 않은 사업 아이템, 산업을 발굴해 IT와 결합을 시도한다. 기존에 단순히 제품을 판매했던 것을 넘어 하동의 지역 가치와 스토리를 담은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발전시키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지역 소멸의 시작, 지역 청소년

‘말은 나면 제주도로 보내고 사람은 나면 서울로 보내라’는 말이 있다. 예로부터 지역에는 서울로 가야 잘 된다고 하는 전통이 뿌리 박혀 있다. 그래서인지 ‘연대 합격’, ‘포항공대 박사학위 취득’ 등 도시로 나간 청년들을 축하하는 플랜카드는 많이 보이지만, 지역 창업을 축하하는 플랜카드는 어디에도 없다.

“나 역시도 어렸을 때 지역에 있는 청년들을 보면서 멋있다고 생각하지 못했다. 도시에 가야만 성공한 인생이라고 배웠으니까 말이다. 이게 문제라는 것을 전혀 인식하지 못했다. 그러다 내가 청년이 되어 지역에 내려와 플랜카드나 지역주민들의 말 한 마디가 마음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서울로 가야만 성공한 인생이라고 말하는 지역 내 인식은 지역에서도 자신만의 꿈을 키워갈 수 있는 청소년과 청년들에게 무작정 서울로 올라가야만 할 것 같은 마음을 들게 한다. 이런 인식의 개선 없이는 하동의 청소년들이 청년이 되었을 때 이들을 지역 외로 유출시킬 수밖에 없다”

하동에 돌아와 지역의 소멸을 막는 다양한 활동을 하면서 이 대표는 청년 유출의 본질적인 문제를 발견했다. 이 과정에서 이 대표는 청소년들에게 지역에서의 다양한 삶을 경험하게 해주는 교육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이들이 청년이 되었을 때 누구든 자신의 꿈을 따라 자유롭게 지역을 선택할 수 있기 바랐다. 꼭 서울이 아니어도 괜찮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던 것이다.

밤빵을 만들어 청소년들에게 나누어 주는 이벤트, ‘밤빵어택’와 같이 지역청년에 대한 긍정적인 이미지를 심어주는 활동과 하동여자고등학교에서 강연을 진행해 지역에서의 가능성을 전달했다. “서울에 가도 좋지만 안 가는 방법도 있어”라는 메시지가 청소년들에게는 큰 신선함으로 다가왔고 이 과정에서 희망을 보게 된 이 대표는 이들을 대상으로 다음 스텝을 준비하고 있다.

“우리는 청소년을 위한 코딩, 디자인, 영상제작 등 지역자원과 연계할 수 있는 4차산업에 관련된 창업 클래스도 내년부터 시작할 예정이다. 청소년들에게 창업에 필요한 팁을 알려주고 여러 지역청년들과 연결해 꾸준한 소통을 이어가고 싶다. 이런 시도를 통해 하동에서 새로운 시작을 생각해 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청년을 통해 만들어가는 ‘하동 상생생태계’

“5년 후 하동의 모습을 종종 상상한다. 카페에 가면 노트북을 들고 자유롭게 일 하는 사람들로 가득하고 그 옆에 지역 청년도 함께 앉아 회의를 하는 것이다. ‘오히려 하동’의 타겟은 프리랜서 청년과 지역 청년 창업자이다. 보통 하동에 청년이 할 수 있는 일이 없다고 하지만 사실 농산/농가, 관청 등은 지역에 인력이 없어 많은 업무를 서울로 맡기고 있다. 서울에서 지역으로 지원사업을 보내도 역량이 있는 청년이 없어 자본이 다시 서울로 올라가는 것이다. 다양한 역량을 가진 사람들이 오히려 하동에 오면 자신의 재능을 살려 먹고사니즘을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또 지역은 프리랜서 청년들의 유입으로 강소농, 예술가, 자영업자를 포함한 지역 청년 창업자들이 서울로 맡기는 일들을 지역 내에서 자체적으로 해결할 수 있게 된다. 지역 내 자본이 외부로 유출되지 않고 지속적으로 지역의 경제를 활성화할 수 있는 것이다. 이를 위해 하동은 청년이 머물 수 있는 주거와, 다양한 직업군의 청년들이 함께 마음을 나눌 수 있는 환경을 준비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 두 가지 일을 통해 하동의 상생생태계를 조성하는 것을 꿈꾼다”

“지역에서 새로운 파도를 만들고 싶은 ‘다른 파도’는 ‘오히려하동’ 청년마을을 통해 하동 지역의 구심점 역할을 맡으려고 한다. 새로운 청년들을 받고 이들을 연결하며 제가 하동에서 경험한 어렵지만, 재미있는 ‘매운 첫경험’을 더 많은 다재다능한 청년과 함께 하길 바란다. 지역의 소멸이 소멸되는 날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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